1. 하나님과 이웃의 통합

본문 앞에서는 제자들을 내 보내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게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나라입니다. 그렇게 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더 나아가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율법교사의 입을 빌려 예수님은 우리 삶에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 위해 진정으로 통합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동일한 사랑으로 위로는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세상을 구분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한 것은 소중한 것이고 세상을 향하여는 속된 것으로 여겨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주일과 평일을 구분합니다. 교회의 일과 세상의 일을 구분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구분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이웃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의 통합이 일어나야 합니다. 세상만 바라보거나 하나님만 바라보거나가 아니라 둘 다 사랑할 수 있어야합니다.

 

2. 전인적인 통합

율법교사의 말을 빌려 예수님께서 하고 싶으신 이야기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 똑 같이 통합해야할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방법론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인적인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삶은 구분해서 살지 않습니다. 전인적으로 삽니다. 그러나 신앙은 전인적으로 살지않고 구분해서 삽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이웃을 향하여 하는 전인적인 사랑이 회복되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자라실 때에도 전인적인 성장을 하셨습니다. 눅2:52에 보면,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지혜-지식적으로, 키-육체적으로, 하나님- 영적으로, 그리고 사람- 사회적으로 전인적인 성장을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전인적인 통합의 신앙이 회복되어야합니다.

 

3. 앎과 행동의 통합

마지막으로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하나로 통합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은 통합하지 못하고 구분하며 사고하고 행동하는 율법학자들을 향하여 강도 만난 자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났습니다. 아마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제사장도 지나가고 레위인도 지나갑니다. 모두들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강도 만난 자를 피하여 지나갑니다. 누가 제사장이고 누가 레위인입니까? 교회 안에서는 모든 것을 다 할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고백합니다. 그러나 정작 삶의 현장에서는 구분하며 삽니다. 머리에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삽니다. 여러가지 이유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거기 이르렀을 때에 그를 보고 불쌍히 여깁니다. 그리고 자기의 것을 다 내어 놓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책임 지려는 행동을 보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누가 이 강도만난 자의 이웃인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앎과 행동이 통합되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