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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를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게 한다는 말의 의미는 그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기준에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움직이는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7절에서 13절까지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30절과 31절에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고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큰 그림으로 볼 때 이 이야기는 제자를 파송하시고 그 제자들의 정체성을 사도로 만드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샌드위치 구조입니다. 제자와 사도 사이에 세례 요한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이야기가 주는 의미가 핵심임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을 통하여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세례 요한이 보여 주었던 삶의 모습입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이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을 두고 옳지 않다고 말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렇게 한 것은 율법에 근거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을 자신의 삶의 자리에 적용하여 행동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헤롯에 대하여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죽기까지 그 말씀의 기준을 따라 살았습니다. 결단코 그 믿음, 그 기준을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았습니다.

헤로디아는 어떻습니까? 헤로디아의 태도를 살펴봅시다. 헤로디아는 자기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고, 평가하고 있는 요한이 기분이 나쁩니다.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데, 그것을 가지고 비난을 하는 요한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딸을 시켜 요한의 목을 가져다 달라고 요청합니다. 헤로디아는 철저히 자신이 중심이었습니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헤롯은 어떻습니까? 헤롯은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6:20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을 두려워하여 보호합니다. 번민하면서도 그의 말을 듣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하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6:17과 26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자기가 선택한 헤로디아를 위하여 자신의 믿음, 신념을 저 버립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성경은 이 땅의 사람들이 이처럼 다른 삶을 살게 된 원인을 분명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명령을 붙들고 끝까지 살지 아니하고 사탄에게 넘어가 그 명령을 깨트려 버린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명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 자기의 욕심이 계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좌우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십니다. 여행을 위해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 것을 명하십니다. 영접하지 않는 자들, 너희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들의 집을 나올 때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라 전파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고칩니다. 그런 그들을 예수님은 30절에 사도라고 부릅니다. 사도는 보내셨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분에게 다시 연결된 제자들의 모습을 봅니다. 사도에게 있어서 능력이나 가르침이나 병 고침이나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잘한다고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처럼 놀라운 일을 행한 제자들이 다시 돌아와 예수님께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다시 보냄을 받을 때까지 예수님과 함께 머물며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십니다.

선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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