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무를 자’ ‘무르다’를 국어사전에 보면, 도로 주고 돈이나 물건을 되찾는 것을 말합니다. 기업 무를 자는 히브리어로 ‘고엘’이라고 부릅니다. ‘고엘’은 히브리어로 ‘되찾다’, ‘구속하다’, ‘해방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기업 무를 자는 가족 구성원의 권리와 재산을 보호하고 회복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가난으로 팔린 가족의 땅이 있다면 그것을 다시 사들이는 것입니다. 빚으로 종이 된 가족이 있다면 그 빚을 갚아주고 가족을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기업 무를 자의 자격은 가장 가까운 남자 친족이 권리와 의무를 가졌습니다.
본문에는 이런 기업 무를 행위를 누가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앉아 있습니다. 1절 중간에 보면,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에 띄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침’입니다. ‘바로 그때’입니다. 이런 단어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손길이 강하게 임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1절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특이한 장면은 그 사람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아무개’라고 부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보아스가 그 사람의 이름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친척입니다. 기업 무를 순서가 어디 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원래 기업 무른 다는 것은 죽은 자의 이름을 이어가기 위한 조치입니다. 지금 그들이 모여 앉은 이유도 죽은 자들의 이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의 이름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자기 이름도 기억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제 보아스가 장로 10명을 청합니다. 지금 보아스와 룻의 상황은 가정의 일 같지만, 공동체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에게 말합니다.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업 무를 자가 그것을 사라는 것입니다. 엘리멜렉의 소유로 된 땅이 있었는데, 그것을 판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판다는 것은 권리를 양도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상대자가 아무개이니 이 땅의 양도권을 가져가라는 것입니다. 4절 끝에 보면, 내가 무르겠다고 대답합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될 때 나서서 그것을 취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보아스는 더 중요한 한 가지를 말합니다. 아무개는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무개는 무르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가 거부한 이유는 자기 기업에 손해가 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나오미였으면, 아기를 낳을 이유가 없으니 모든 것이 자기 것으로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아이를 낳게 되고, 양육해야 하고, 그 결국 자기 이름이 아니라 엘리멜렉의 소유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아스에게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고 권리를 이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