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생명이 회복됩니다.
새예루살렘에서 가장 중요한 회복은 생명입니다. 왜 생명의 회복이 필요합니까?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영적 생명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된 생명이 이제는 완전한 회복으로 나아가는 자리입니다. 생명의 회복을 보여주는 그림이 있습니다. 생명수의 강입니다. 생명수의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생명수의 강은 수정 같이 맑다고 하였습니다. 생명수의 정결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결함은 거룩한 성전과 같은 새예루살렘의 속성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때 그곳에는 다른 것을 섞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저것 때문에 참된 생명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일도 없습니다. 또한, 강 좌우에는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열매들은 모든 성도를 먹이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생명 나무의 잎사귀들은 치료합니다. 치료라는 말은 지금 상처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핍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오염을 치료합니다. 죄로 오염되어 우리를 괴롭히는 흔적들을 치료합니다.
두 번째, 저주로부터 회복됩니다.
3절에 보면, ‘다시 저주가 없으며’라고 말합니다. 이 선포는 에덴동산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원래 에덴동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선악과는 우리가 선택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상태에서 있던 나무입니다. 그러니까 선악과는 저주의 가능성이 설정되어 결국에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에덴에서 범죄 한 아담과 하와를 비롯한 모든 인간에게 내려진 심판입니다. 그러나 새에덴 동산에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없습니다. 오직 생명 나무만 있습니다. 이것은 선악과로 인해 죄가 이 땅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아예 그 저주의 원인을 제거하여 다시 저주받을 가능성을 아예 없애 버린 것입니다. 심판받을 근거를 없애 버린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고 저주 가운데로 되돌릴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인해 새예루살렘에는 어떤 저주도 내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에 있는 생명 나무와 같은 생명이 충만하여서 그 생명을 제어할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이 회복됩니다.
새에덴에서 회복되는 가장 마지막 단계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에덴 회복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의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살았습니다.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게 되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처를 에덴동산에서 다시 하늘로 옮겼습니다. 그 후로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기 전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타락이 가져온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를 원하는 갈망 속에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얼굴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누리는 삶을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될 때 하나님의 통치는 완전하고 영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