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확장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그것을 겸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겸손이 무엇입니까? 어떤 것이 겸손입니까? 엔드류 머레이는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피조물로서 내가 죄인임을 발견할 때 나에게 부어 주시는 주님의 품성이라고 말합니다. 겸손은 비교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발견할 때 오는 것입니다. 겸손은 하나님께 자신을 항복시키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아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 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 뜻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겸손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전부이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고백할 수 있을 때 겸손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겸손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를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겸손하기 위해 먼저 우리 내면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복음의 가치를 가지고 자신의 내면을 만들 때 겸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가치를 가진 사람의 내면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1절입니다. 사도 바울은 겸손을 위한 전제 조건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입니다. 두 번째는 사랑의 무슨 위로입니다. 세 번째는 성령의 무슨 교제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긍휼이나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삶의 4가지 기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있을 때 비로소 겸손이 우리 안에 자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가지는 겸손은 바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 말은 쉬운 성경 번역에 보면,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우리에게 샘플이 되고, 모범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떻게 겸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면 된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생각과 행동이 같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삶을 통해 어떻게 보여주셨습니까?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말은 그분의 지위와 그분의 명예와 그분의 누림은 하나님과 동등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포기하셨습니다. 그것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이 말은 포기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그 지위와 명예와 권리를 내려놓으신 것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으로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되어 살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하신 것입니다. 또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자리까지 내려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자신을 낮추실 때, 그 낮춤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높이십니다. 우리가 진짜로 겸손해지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높여 주십니다. 우리가 자신을 높이려고 애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높이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벧전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