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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라는 사람은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성공한 사람이었고, 교육과 정치 그리고 종교계에서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잘 이루어 놓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성실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삶과 종교 생활은 니고데모에게 영적인 만족감과 충만함을 주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니고데모는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영적인 갈급함을 안은 채 예수님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본문 2절의 말씀에는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다고 가르쳐 줍니다. 밤에 조용히 왔다 가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러 온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 자신의 삶에 금이 가는 것을 원치 않았고 동료 바리새인들의 비난과 분노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방문하러 온 것 뿐이데, 그것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변의 압박감과 사회적 지위, 종교적 편견으로부터 오는 무게를 이겨내고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밤과 같은 그 압박감과 장애물을 뚫고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그것을 알지도 못했고,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니고데모는 예수님으로부터 영적인 진리를 믿지 못한다는 책망을 듣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랬던 니고데모가 요한복음 7장에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 예수님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나자, 바리새인들은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때 니고데모가 나서서 동료들에게 예수님을 변호합니다. 자신들의 율법에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알아보고 그 뒤에 죄의 여부를 판단하게 되어있음을 말하며 변호합니다. 어쩌면 니고데모의 태도는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변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처음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의 니고데모와의 모습과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분노를 두려워했던, 그래서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니고데모가 이제는 동료들과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변호하며, 그에 대해서 알아보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의 변화는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되자 니고데모는 한 나라의 왕을 장사 지낼 만큼 많은 양의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다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니고데모의 이 행동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믿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이제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유대인의 왕으로 그리고 메시아로 믿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니고데모는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와 자신의 헌신과 사랑을 드리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요한복음 19:39절의 말씀은 니고데모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님을 조용히 찾아왔던 것은 이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신앙에서 믿음으로 나아온 니고데모의 변화에 주목해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 인생의 평생의 과정 동안 계속해서 성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와 같이 믿음의 시작점에 있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압박감과 장애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사회적 지위 종교적 신분의 압박과 두려움을 뚫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고 새로운 영적인 삶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신앙은 믿는 순간에 온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한 걸음씩 겸손히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통하여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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