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는 것이 자녀로서 누리는 삶이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의 가장 근본, 기초,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10가지 계명만 주신 것이 아니라 613개의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중에 하라고 하는 긍정적인 계명이 248개입니다. 사람의 몸의 마디의 숫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지 말라고 하는 부정적인 계명이 365개입니다. 일 년 365일을 기억하게 하는 숫자입니다. 엄청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613개의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윗은 시편 15편에 보면 613개의 율법을 함축하여 11개의 규례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이사야 33장에서 그 11개의 규칙을 다시 6개의 규칙으로 좁혔습니다. 그리고 미가는 그 여섯 가지 규칙을 따서 세 가지 규칙으로 좁혔습니다. 하박국은 그 3가지를 가지고 한 가지로 요약하여 말합니다. 그 한 가지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 가운데 한 율법사가 등장하는데, 이 율법사들의 관심은 어느 율법이 더 크냐? 어느 것이 더 우선하느냐? 에 매우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시험하여 묻는 장면입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 예수님이 생각하는 순서를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그러니까 예수님이 보시는 율법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여기서 두 계명이라고 하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은 첫 번째, 두 번째와 같이 순서가 있는 것처럼, 크기가 다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9절에서 ‘둘째도 그와 같으니’라는 말을 통해 이 둘의 강도가 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은 같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같습니까? 행하여야 할 강도가 같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면서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두 계명에 율법이 말하는 모든 것, 예언서가 말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달려 있다. 요약되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율법의 핵심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웃 사랑은 외적인 표현입니다. 실제적인 표현입니다. 구약의 모든 내용이 성취되는 결과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목표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이처럼 이웃 사랑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겠습니까?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내 죄의 뿌리를 잘라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모두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삶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보존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무엇을 성취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것이 틀어지고 어려워지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바울은 말세가 되면 이런 것이 더 강해질 텐데, 이런 것으로부터 떠나라고 말합니다.
딤후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본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별개로, 그리고 이웃과 별개로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은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추구하려는 모든 마음과 생각, 태도를 다른 사람에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을 위해 첫 번째 계명이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