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못하는 대면 예배 금지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예배에 대해 혼란스러워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어떤 분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지 않으니까 예배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비록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절대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예배가 멈춘다는 말은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과 기도가 멈추고,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전염병이 우리를 뒤덮어도, 아무리 전쟁이 나도 우리는 예배를 드려야 하고 그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누려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예배는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린다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교회를 거룩하고 보편적인 공동체로 정의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에 의해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이 함께 모인 공동체가 교회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는 교회는 돌들로 세워진 집으로, 양 떼로, 한 몸으로, 한 나라로,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참된 신자들로 구성된 회중의 모임입니다. 모든 성도는 이 회중의 일원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교회의 일원이 되어 연합하여 교회의 하나됨을 지켜내야 합니다. 교회의 교리와 가르침을 따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지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덕으로써 동일한 몸의 지체로 형제 된 서로를 세우도록 섬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공동체로 함께 모일 수 없는 환경이 될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구약 시대에는 사람들이 성전에 올라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전이 무너지고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더 이상 성전에 모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주변에 있는 유대인들과 삼삼오오 모여 함께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회당입니다. 그것도 안 되면 혼자 예배하기도 했습니다. 다니엘은 총리로서 자기 집에 올라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이 있었기에 그 약속의 날을 기다리며 예배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대면 예배 금지라는 말을 참 불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대면 예배 금지라는 말은 예배를 금지한다는 말보다 함께 모이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에 초점이 있는 말입니다. 마치 대면 예배 금지가 이제부터 예배를 드리면 안 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정부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단지 모이는 숫자를 제한하고, 전염병이 나를 통해 전염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조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비대면 기간에 우리는 손 놓고, 예배도 드리지 않고, 성도의 교제도 그치라는 말입니까? 성경은 초대교회의 박해 속에서도 온 세상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모일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이라는 말은 당시 박해 속에서 핍박을 두려워하거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약해져 믿음의 삶을 포기하는 것, 예배를 드리는 것을 게을리하고, 공동체가 함께 만날 소망을 잃어버리고, 나태하게 사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이 가까이 왔음을 분명히 인식하는 사람은 예배를 포기하는 삶이 아니라 개인의 예배, 가정의 예배, 이웃과의 예배를 드리다가 교회공동체가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는 환경이 될 때마다 공동체 예배에 참여하고 서로 격려하며 힘을 얻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다양한 개인의 예배, 가정의 예배, 작은 숫자이지만 함께 모이는 예배가 생명력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