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은 어린 시절 부터 많이 듣고, 읽었던 말씀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본이 되는 말씀이라 볼수 있다. 소금은 음식의 조미료나 식품을 저장하는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방부제나 치료제로도 사용되었다. 레위기 2장에서는 모든 소제물이나 예물에 소금 쳐서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라 하기도 했다. 민수기 18장은 이스라엘에서 분깃이 없는 제사장들에게 소금 언약을 맺으면서 ‘네 분깃, 네 기업’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분깃이요 기업이라 하셨다. 이렇게 다양하게 소금의 용도를 말씀하시면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소금이라 하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용도로 사용되느냐, 하나님이 어떤 언약을 맺었는가 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맛, 하늘의 맛, 은혜의 맛을 알고, 경험하는 것이 세상의 소금으로 인정될 수 있는 가장 기본이라고 볼수 있다. 예수를 믿지 않았을 때에는 고통과 어려움 혹은 의미 없는 생활을 하면서 살지만 주님을 만났을 때는 죄사함의 은혜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가슴이 벅찬 감동과 감사와 기쁨이 넘쳤을 것이다. 그후 세상의 모든 만물을 볼 때는 놀라운 창조주 하나님을 보게 되며, 그냥 주님을 생각하면 기쁘고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기도하기를 즐겨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는 은혜를 맛보게 된다. 또한 말씀을 읽고 들을 때마다 축복과 은혜의 말씀으로 눈물이 흐르고, 마음에 들어와 심령을 쪼개고 회개하며 거룩함을 향한 열정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주님을 향한 열정과 열망, 감사와 찬양으로 감격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로인해 주변 사람들이 ‘정말 많이 변했어. ’ ‘예수 믿더니 달라졌어. ’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이런 것이 예수 믿는 맛이고 세상이 소금이라 할수 있다.
성경에서도 예수는 만나 변화된 사람들로 가득하다. 귀신들려 고통당하던 사람, 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 앞에 있는 사람, 간음하다 현장에서 돌에 맞아 죽음 앞에 있었던 사람들 등 등. 그들이 주님을 만났을 때 죄사함과 회복으로 감격의 눈물로 주님을 찬양했다. 사도행전 3장에서 태어나면서 한번도 걷지 못하고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사람이 성령에 충만하였던 베드로와 요한으로부터 예수의 이름으로 걷게 되었을 때 그는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 했다. 그것을 본 사람들도 ‘심히 놀랐다’ 말씀하신다. 이것이 예수 믿는 맛이며 세상의 소금이다. 행11: 26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리스도인이란 말 자체가 어려운 상황과 핍박과 조롱가운데에서도 예수 믿는 맛을 알고 살았던 사람들을 보고 믿지 않는 자들이 이야기했던 말이다. 우리는 이런 맛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가? 이런 상황이 과거의 일이었다면 다시 주님의 은혜와 감격을 맛보아야 한다. 코로나로 비대면 예배로 찬양하지 못하고, 말씀도 듣지 못하고, 교회가서 기도도 할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오히려 코로나의 상황이 주님을 집중하여 만날 수 있고, 말씀을 읽으면서 은혜받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면서 예수믿는 은혜의 맛을 볼수 있다. 이렇게 예수믿는 맛, 기쁨과 감동으로 사는 것이 빛이 되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6절은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세상의 빛은 착한 행실이다. 예수를 믿어도 사람들을 조롱하고, 무시하고, 싸우고 투쟁하고 갈등을 조장하거나, 악한 행실, 추악한 행실, 패를 끼치는 행위는 세상의 빛도 아니고 착한 행실일 수 없다. 1 5절은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그리스도인은 가까이 있는 가족으로부터 시작해서 주변 사람들, 사회 곳곳에서 주님의 성령으로 충만하기에 웃고, 말씀의 은혜에 감격하여 ‘사랑한다, 고맙다., 감사하다, 행복하다’란 말과 행동으로 착한 행실을 하는 사람이 바로 세상의 빛인 것이다. 그 기반은 우리 주님이 ‘온유하고 겸손’하고(마11:29), ‘긍홀이 많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하시며 사랑으로 우리를 축복하시는 겸손하고 선하신 하나님’(시 103:8, 요1 서4:8)이시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는 예수 믿는 참맛, 그 맛으로 비쳐지는 등불의 빛이 필요한 시대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악취가 나고, 빛이 아닌 어두움을 비추는 그리스도인이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어두움이 강할 때 조그만 빛은 더 선명하게 비쳐질 것이다. 삶에 맛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맛은 더 강력한 소금의 맛이 되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다. 그래서 16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이 우리로 이뤄지길 소망한다. 예수믿는 맛을 잃었다면 다시 예수 믿는 맛을 경험하길 바란다. 그 예수 믿는 맛이 빛이 되어 사람들에게 들어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