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전 세계의 대유행이 되면서 각 나라는 자기 나라의 문을 닫아걸기에 바빠졌습니다. 어떤 도시는 통행이 전면 금지되어 일정 기간 모든 시민이 집 안에만 있어야 했습니다. 길거리에 다니다가는 벌금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국가가 봉쇄되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밖으로 나가던 것을 멈추고 자기 집 안에 고립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고립이 인간을 얼마나 답답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런 수고를 하고, 고생하는 동안에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환경인 우리 지구는 살아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다에 고래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대기 오염이 줄어들었다는 말도 들립니다. 사라진 동물들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자연이 다시 숨쉬게 되었고, 죽어가던 지구는 다시 잠시나마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한 개인의 삶은 불편해지고,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 속에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회복되어야 하며, 무엇이 다시 살아나야 하는지를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숨 가쁘게 살아왔습니다. 매일 발전해야 하고, 전진해야 하고, 성과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끊임없이 경쟁하고, 기업과 기업이 사활을 건 전투를 하였습니다. 그 삶의 환경에 뛰어들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은 마치 인생이 다른 것은 없고 공부만 있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부모도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신앙의 영역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도 모르고 달려오지 않았습니까? 우리 삶의 자리에 무슨 흔적이 남아야 하는지도 생각해보지 않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이젠 교회에 제대로 나올 수도 없고, 예배도 마음 놓고 드리지도 못하고, 함께 식탁 교제도 나누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벌써 반년을 보내다 보니 이제사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예배가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고백해야 하는지, 우리의 헌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예언자적 메시지를 전하며 살아갔어야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그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며 살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이끄는 바람에 밀려가다 보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던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다시 외쳐야 할 때입니다. ‘아직 사십일이 남았으나 이후에는 니느웨가 무너진다.’라고 외쳤던 요나처럼, 우리도 이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분명한 확신과 담대함 속에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믿음이 흔들리고, 믿음의 삶들이 혼탁스러워지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욱 담대하게 기도하며, 말씀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의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삶의 자리까지 확장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 공동체의 모임을 통해 함께 격려하고 위로하며, 힘을 북돋아 주어 더욱 힘찬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