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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를 부르시고 지금까지 함께 걸어오시면서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성장을 점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 상태를 보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안타까워하십니까?

막 8: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깨닫는다는 말의 의미는 이해한다. 마음으로 받아 들인다. 예수님이 보여 주시고자 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려고 하는 것들, 알려 주시려고 하는 것들을 자기들 마음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의 마음은 단단해져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나 신앙의 방식, 신앙의 삶의 모습들을 제자들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일하심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람들의 삶의 개념에서만 바라보며 눈에 보이는 떡만 찾고 있다면 결국 그들의 삶은 바리새인들과 같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갈릴리에서의 사역 막바지에 이르면서 예수님의 사역은 한 가지 핵심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생명의 주님이심을 보아야 하는데 아직 보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계속해서 생명의 주님으로서의 사역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12제자를 파송하셔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생명의 능력이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7장 23절부터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인은 이방여자입니다. 귀신 들린 어린 딸을 치료하고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옵니다. 지금 이 여인은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을 누리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7장 31절부터는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에바다. 열리라.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능력이 임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보리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어 마리로 4천 명을 먹이신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떡만 보았지 생명의 주님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22절부터 보면 갈릴리에서의 사역을 결론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서 보여주려는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22절에 보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친히 손을 잡아 안내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에 침을 뱉으시고 안수하십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그가 대답합니다.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그리고 난 다음에 예수님께서 다시 안수하십니다. 그랬더니 그가 모든 것을 밝히 보았다고 말합니다. 영적 눈을 떠야 합니다. 밝히 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도록 보여 주시고 안내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보일 때까지 예수님은 그들의 눈을 열어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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