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살아나리라.’는 고백으로 우리는 기도 대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만 한다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와 함께 우리를 살아나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삶의 행동들입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 속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담대하게 다니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를 23절에 보면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은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하였던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시며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믿음이었고 그 믿음이 다니엘의 삶 속에서 믿음의 행동을 하게 할 때에 다니엘은 끝까지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의 어떤 삶이 다니엘로 하여금 이런 믿음을 드러내게 하였을까요?
먼저 다니엘은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지금 다니엘의 상태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바벨론이 페르시아로 바뀐 상황입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성전이 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와 예루살렘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었지만 다니엘은 그 방향으로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환경은 예루살렘을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던 다니엘은 여전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그 안에 일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설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한다는 말은 솔로몬이 성전 봉헌식때 기도하였던 내용 가운데 나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자손이 범죄하여 이방 땅으로 사로잡혀 갈 경우에 흩어진 곳에서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 쪽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이제 얼마남지 않은 포로의 시간을 끝까지 승리하기 위하여 여전히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다니엘은 창문을 열었습니다. 창문을 열었다는 말은 창문들이 열린 상태라는 말입니다. 하나의 창문이 아니라 여러 개의 창문, 다시 말하면 2층의 모든 창문들이 열려져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다니엘의 입장에서 참으로 위험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을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다니엘을 고발하여 사자굴에 던져 넣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열려진 창문을 통하여 그들이 다른 것을 보았다면 괜찮았겠지만 다니엘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금지된 기도를 하고 있는 다니엘의 모습을 열려진 창문을 통해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용기를 표현합니다. 그 용기가 다니엘로 하여금 사자굴에 던져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그들을 이기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번 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전에 하던 대로 하는 몸에 밴 기도의 습관이었습니다. 당시 다니엘은 왕궁에서 일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세 번 기도한다는 것은 아침 점심 저녁때에 하는 기도일 텐데, 아침과 저녁은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심때는 기도하기 위해 왕궁으로부터 집으로 왔다 갔다 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불편한 일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헌신 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낮추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마지막은 언제나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기도의 삶이 회복될 때 우리는 오늘 현실의 삶에서 다시 살아나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고백으로 드리는 기도가 우리를 살아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