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함께 깨어 있는 한 시간 (36-39)
38절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가십니다. 그리고 요청하십니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그렇다면 예수님과 함께 깨어 있다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환경에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깨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마지막 순간을 앞에 두고 영적으로 매우 예민한 상태에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나태하거나 게으른 상태가 아니라 각성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런 상태를 너희도 유지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예수님의 기도는 어떤 기도이겠습니까? 겟세마네의 기도입니다. 겟세마네의 뜻은 ‘기름 짜는 틀’입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공생애의 마지막 고통의 시간을 앞두고 간절한 통과의 시간을 갖고 계신 것을 보여줍니다. 얼마나 간절한 기도인지 모릅니다. 최선을 다하는 기도, 생명을 걸고 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는 한 시간 (40-43)
40절에 제자들에게 오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우리가 깨어 기도하는 이유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41절에서 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깨어 있어야 하는 영역은 마음의 영역보다 육신의 영역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며 순종하려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삶을 살아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욕심이나 유혹, 안락함이 우리를 옮겨가지 못하게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는 기도는 우리의 육신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아 하나님이 다루시도록 사용하는 한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이 시간을 통하여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쓰임 받는 삶이 열려야 합니다.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함께 가기 위해 깨어 있는 한 시간 (44-46)
44절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45절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자고 쉬라. 때가 가까이 왔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린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46절에 보면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깨어 있는 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기 위함입니다. 비록 그곳이 고난의 자리이고, 험난한 통과의 절차가 필요한 곳이라 하더라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깨어 있지 못한 제자들은 56절에 보면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야 하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걸어가지 못했습니다. 깨어 있지 못할 때 우리는 주저앉아 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예수님을 모른다 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