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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세상의 어떤 모임과는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과도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이처럼 교회가 구별되는 이유는 교회는 세상과 같은 영역을 다루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비록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이 땅에 임한 하늘의 삶을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서 하늘을 보고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능력입니다. 골로새서에서 사도 바울은 어떤 영역에서 하늘을 누려야 하는지를 소개합니다.

1. 모든 지식에서 하늘을 누려야 합니다. (9-10)
당시 교회 안에는 영지주의 사상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영지주의는 영은 선이고 육은 악이라는 영육이원론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단사상이 당시에 일어났을 때 사도 바울은 중보하며 기도합니다.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소서.’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가 무엇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이미 임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깨닫고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임하고 있고, 그 통치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0절에서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나야하기 때문입니다.

2. 모든 능력에서 하늘을 누려야 합니다. (11-12)
교회는 땅의 힘이나 능력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능력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라고 할 때 그의 영광의 힘은 하나님 자신 속에 존재하는 능력, 위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그 능력을 성도들에게 위임해 주셨습니다. 부어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을 계속하여 공급받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 능력은 특별히 고난 속에서, 어려움 속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11절에 보면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오늘 여기서 누리며 살아갈 때 그 능력으로 우리가 능력을 입어 기쁨으로 이겨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모든 고백에서 하늘을 누려야 합니다. (13-23)
교회의 참된 능력은 고백에서 나옵니다. 믿음의 고백을 할 때 거기에서 능력이 드러납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가 분명한 믿음의 고백을 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믿음의 고백은 단순히 땅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 속에 하늘의 일들이 어떻게 임하였는지를 보고 누리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늘을 땅으로 가져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3절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겼습니다. 그 아들 안에서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창조주이심을 보아야합니다. 교회의 머리로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셔서 만물의 으뜸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셔서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예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죽을 육체를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세우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입니다.

선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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