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마다 자기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십니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요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어려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중심이 되지 아니하고 다른 것들이 고린도교회의 삶의 자리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중심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놓쳐 버림으로 말미암아 고린도교회 안에 분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사도 바울은 그 상황을 놓고 고린도교회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10절에 나오는 대로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가장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분파가 나누어졌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분파가 나누어졌는가 하면 여러 설교자와 지도자들의 이름을 가지고 분파를 나눈 것입니다. 바울이나, 아볼로, 그리고 게바로 불리는 베드로, 이들 모두는 예수님을 전하였던 사람들이고, 신실하게 그들의 삶을 예수님을 전하는 삶에 집중하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작 교인들이 스스로 나는 누구의 제자라고 말하면서 줄을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분파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고린도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참된 지혜인지를 놓쳐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에 대한 혼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22절에 보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성적인 증거를 요구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할 때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표적이 아니라 저주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이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지혜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교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놓쳐 버림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무엇을 자랑해야 하는지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린도교회는 세상이 자랑하는 조건들을 가지고 자랑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위해 2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 세상의 약한 것들, 세상의 천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모으셨는가 하면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그런 것으로 자랑하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그런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분명한 사람들은 세상적 기준으로 자랑하는 그런 자기의 자랑으로 머물러 있지 않게 됨을 말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자랑은 세상의 것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하는 자랑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