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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의 이야기는 구원과 회심을 소개합니다. 눅 18:35-43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42절에 보면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삭개오의 이야기에서도 9절에 보면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핵심 앞 뒤로 구원의 선포를 받게 된 과정과 결과를 소개합니다.

18장에 나오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38절, 39절에서 계속 반복하고 있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선포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향하여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이 나의 어둠 가운데서 건져내실 수 있는 분이심을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41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단순히 눈을 뜨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눈을 뜬 다는 것은 영적으로 그 앞에 나온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를 이 어둠 속에서, 이 무지함 속에서, 이 막힘 속에서, 이 제한 속에서 나를 건져 낼 수 있는 분, 나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하여 내가 보아야 할 세상을 보게 하실 분은 당신, 예수님 밖에 없음을 선포할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삭개오는 헬라어로는 순결한, 무죄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고, 히브리어에서는 깨끗한 자, 의로운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라 이름하는’ 이라는 표현의 의미 속에는 이처럼 깨끗하고 순결한 자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사실 삭개오는 사람들에 의하여 죄인이라고 낙인 찍힌 사람입니다. 이런 삭개오에게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삭개오가 누리는 구원은 무엇입니까? 그동안 자기 중심적으로 자신의 욕심대로, 자신의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던 삶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초청을 기쁘게 받아 들였습니다. 그 집을 예수님으로 채웠습니다. 그럴 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는 놀라운 선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여기에 그가 받은 구원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이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을 가지고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이 아니라 자유한 자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느니라.’

그리고 또 하나, 그가 받은 구원에 포함된 중요한 의미는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18장에 나오는 맹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들의 삶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삭개오는 어떻습니까?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실 때 그가 급히 내려옵니다. 그리고 즐거워하며 영접하였습니다. 관계가 변화된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이 말하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바로 삶의 변화가 시작되고 그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가 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여기서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의 생각이 변화되었습니다.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도 말합니다. 구원의 고백이 행동을 하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단순한 선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변화까지 일어나야 함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기 시작하면 우리의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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