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감사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단지 예수님이 오신 것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로 말미암아 나의 삶에 놀라운 회복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주님이 이루어 놓으신 그 회복을 나의 삶 속에서 내가 누리게 하는 첫걸음입니다. 참된 자유와 기쁨을 주신 그 주님께 감사함으로 날마다 나아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늘 살아가는 은혜가 모두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은 무덤에 장사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표현을 사도신경은 여러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죽으시고, 장사된 지, 죽은 자 가운데서’ 이처럼 같은 의미의 단어를 여러번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사도신경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고백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나의 죄도 함께 죽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나의 옛 사람이 죽었음을 말하고 이는 내가 새 사람의 형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도 말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변화이 기준입니다.
또한 이처럼 죽음에 대하여 반복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역사적 사실임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죽음이 사실임을 확인하기 위하여 고난당하시는 모습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정도 채찍이면, 그 정도 고난이면, 그 정도 십자가라면, 그 정도 매달림이라면, 그 정도 창으로 찌르는 행위라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의학적 설명입니다.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요셉의 등장으로 시신을 무덤에 모시고 확인하는 작업까지 상세하게 기술할 뿐 아니라 빌라도가 그 무덤을 지키게 한 것까지 모두 죽음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장사되심은 고난의 마지막 완성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부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친히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바울은 서신서에서 53회 정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고백 가운데 중요한 신앙의 고백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 만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관련된 사건입니다. 우리 또한 죽음과 부활을 보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그리스도와 더불어 죄에 대하여 죽었고,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장차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믿음입니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조건들이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통해 자신이 유익을 얻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거짓말을 하려면 구체적인 사람의 이름이나 지역명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주 자세히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고 있는 바울의 고백처럼 그 내용을 나의 신앙으로 고백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에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과 나의 죄를 위해 마침내 죽으셨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