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리더라고 하면 우리가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리더와 영웅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사실 구약의 리더들은 영웅처럼 나타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로 넘어 오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된 뒤로는 하나님은 보통의 남자와 여자를 사용하셨습니다. 리더의 영향력이 달라졌다는 말입니다.

아나니아는 아마도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직접 보고 경험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에서 예수님께서 환상 중에 아나니아를 부르시자 아나니아가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아주 적극적인 모습으로 반응하는 것을 볼 때 주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순종할 준비가 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나니아가 11절에서 사울이라는 이름을 듣게 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사울을 도와주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13절, 14절에서 도저히 사울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이유들을 대기 시작합니다. 아나니아로서는 도저히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두려움에 떨며 예수님께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아나니아는 바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과’라고 할 때처럼 사울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행한 끔찍한 일들’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14절에서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과거의 배경이 오늘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울의 모습은 얼마 전 길을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모습일 뿐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교회의 다른 성도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정보를 가지고 그 사람들을 대합니까? 우리가 세상의 사람들을 바라볼 때 어떤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생각하고 평가합니까? 우리는 아나니아와 같이 언제나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 안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영역 안에서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특히 다른 삶이나 문화에 대하여 매우 편협한 태도를 가질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때, 예수님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 가치는 달라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뒤집어야 할 사닥다리입니다.

15절에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이유를 묻지 말고 가거라! 내가 그를 이방인과 왕과 유대인들 앞에 세울 나의 대리인으로 뽑았다. 이제 나는 장차 그가 당할 일, 곧 이 일에 따르는 혹독한 고난을 그에게 보여 줄 것이다.” 영어 성경에 보면 ‘그는 내가 선택한 나의 도구이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의 자녀들을 위한 도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우리는 주님이 택한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다양한 은사들을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은사를 가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은사들이 서로 섞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냅니다. 그리고 그 조화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데 사용됩니다.

19절에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지금 눈이 멀고 자기 스스로 자기 힘이 없어져 아무 것도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사건 후에 음식을 먹고 강건해진 사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 변화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내 삶을 조정해가야 합니다. 그렇게 승리합시다.

선창교회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