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님 앞에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라고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나의 고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신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세례 요한이 바로 그런 경험을 하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선포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요한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은 헤롯의 아내가 된 헤로디아 때문이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어린 아이들을 죽이라고 할 때의 왕이 헤롯왕이었습니다. 그가 죽고 나자 그의 아들들에 의해 나라가 나뉘어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헤롯 아킬라우스는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지역도 물려받지 못한 헤롯 필립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헤로디아라는 매우 아름다운 사촌이 있었는데 헤롯 필립이 그녀와 결혼하였습니다. 어느 날 헤롯 안티파스가 필립의 집을 방문하여 헤로디아를 보고는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자기 아내를 고향인 아라비아로 쫓아내 버리고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아 갈릴리에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세례 요한이 볼 때는 옳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근처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공공장소에서 노골적으로 필립의 행위가 나쁜 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헤로디아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기회를 보고 있다가 요한을 체포하게 되었습니다.
요한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을 한 것 뿐인데 감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마도 매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그가 선포하였던 예수님이 치유의 사역과 죄사함을 선포하고 계시고 용서의 복음을 선포하고 계셨을 뿐 아니라 자기를 감옥에서 끌어내 주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가지고 있었던 메시아관은 그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메시아관과 비슷하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시면 정치적으로 압박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힘으로 회복시켜 주시고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실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보내어 당신이 오실 메시야가 맞는지,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으로서는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광야에 살면서 메시야를 선포하였는데 정작 그 메시야가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감옥 안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신앙의 삶의 모습들이 내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지 않을 때, 우리가 제한적으로 알고 있던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하여 보여지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심지어는 나는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낙심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전해주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마 11: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것은 구약에 선포된 메시야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 앞에 무엇입니까?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예수님은 예수님의 진실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거기에 주님의 마음이 있고, 일하심이 있습니다. 그 주님을 만날 때 주님의 아들 딸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