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설교
Message of the Seonchang Church
정체성의 변화 야곱은 ‘속이는 자’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며, 언제나 빼앗아야만 만족하는 불안하고 두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얍복강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으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붙잡는 자로서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이 새로운 정체성을 받은 야곱은 형 에서 앞에서 겸손해졌고, 자신의 연약함을 […]
인도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케리는 원래 구두 수선공이었지만, 교회의 무시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도 선교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7년 동안 단 한 명의 회심자도 없었지만, 번역 사역과 복음 전파의 기초를 놓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끈질긴 신뢰와 사랑의 마음이 결국 하나님 나라를 넓히는 씨앗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형적 성공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사무엘상 16:7에서 “사람은 외모를 […]
예수님은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1-4절)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일부러 들어가신 이유는 삭개오를 만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리고 입구에서 육체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치유하신 후, 이제는 영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삭개오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삭개오는 히브리어로 ‘자카야’(주님은 순수하시다)라는 의미이지만, 그의 삶은 전혀 순결하지 못했습니다. 세리장으로서 동족의 돈을 착취하여 부자가 된 사람이었고,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외면하던 자였습니다. 아무리 돈과 권력이 […]
우리는 자라면서 모순된 메시지를 많이 듣습니다. ‘너 자신을 위해 살아라.’, ‘너의 행복이 최우선이다.’, ‘성공이란 더 많이 가지고 남들보다 높아지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간디, 링컨, 만델라, 마더 테레사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을 존경합니다. 이들이 위대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순은 […]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 위에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시며, 천국 열쇠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문지기로서 세워졌습니다. 문지기는 열쇠를 가진 사람입니다. 문을 열고 닫는 사람, 문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고 닫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문지기의 역할은 안내팀, […]
가정의 달, 교회 창립 기념 주일, 임직식을 함께 준비하며 우리 교회를 돌아보게 합니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과 신뢰 속에서 하나님 앞에 한 몸을 이루기 위해 언약을 맺는 신성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결혼이 본질을 잃고 껍데기만 남을 때 위기를 맞듯,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 안에서 자라가고 사명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
이 말씀은 신앙의 연속성과 공동체적 특성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우리가 누구의 뒤를 따라 걷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뒤에 누가 이어갈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존 칼빈의 “하나님의 영광의 극장” 개념을 통해 창조 세계 전체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선하심과 영광이 드러나는 거대한 무대임을 설명합니다. 이 무대에서 인간은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응답하며 […]
부활은 우리의 상식과 일상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하나님 나라의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제자들과 여인들은 기쁨보다 먼저 충격과 혼란을 경험했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전환은 늘 충격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로마 백부장에 의해 확인되었고,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로 싸서 바위 무덤에 안치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죽으심은 객관적 사실이며, […]